
한일합방의 상징으로 남은 사진
그런데 왜 하필 8월 29일이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1910년 8월 22일 일본 정부의 공식 문서
원래 한일합방의 시작 날짜를 1910년 8월 26일 금요일에 하려고 했으나
그 다음 날이 순종의 즉위기념일이어서
8월 29일 월요일로 바꾸자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주말에 순종 즉위기념 파티는 하고 나라를 바치겠다는 대한제국(조선)의 뜻이었다

설마.. 일본이 자기들 멋대로 해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른 자료도 찾아보았다

청나라 말기 지식인 량치차오 (양계초)

1910년 9월에 쓴 '일본병탄조선기'에 따르면
일본정부 공식문서의 내용과 똑같이 나와있다
주말에 순종 즉위기념 파티는 하고 나라를 갖다 바치겠다는
대한제국 군신의 달관한(?) 기이한 모습에 현타를 느꼈다

이렇게 해서 1910년 8월 29일에 한일합병이 됐고

이완용보다 돈을 5배 많이 받은
고종의 친형 이재면
정말 찢재면스럽다

엣헴엣헴 씹선비 양반 유생들도 일본 정부에 돈을 받았다
유교? 성리학? 일본이 주는 돈 앞에서 쓸모 없었다
무엇보다도 양반과 귀족만 돈을 받은 게 아니다
고종과 순종 일가족도 돈을 받았다

매일신보 1910년 10월 23일 총독부 예산
◉ 총독부 예산 (1910.10.23.) < 110년전 매일신보 < 기사본문 - 근대뉴스


조선총독부 운영비가 300만원인데
고종과 순종 일가족은 150만원을 받았다

1910년 일본 총리의 월급이 800엔이었으니
나라를 갖다 바치고도 금수저의 삶을 살았다



1922년 12월 21일 조선일보 기사
순종의 하루 일과인데
돈과 시간 모두 썩어 넘치는 삶을 살았다
이러니 해방이 되고 이념으로 남과 북으로 나누어졌지만
남쪽의 이승만, 북쪽의 김일성 모두 조선 왕조를 극혐했다


“망국은 슬프지만 왕,양반,상투가 없어진 것은 시원하다” | 중앙일보

Kim Il Sung, With the Century, Vol. 1, Chapter 2, “An Unforgettable Place—Huadian,” Foreign Languages Publishing House, 1994, pp. 152–153
김일성, 『세기와 더불어』 제1권, 제2장 「잊을 수 없는 곳—화전」, 외국문출판사, 1994년, 152~153쪽.


이승만 정부와 여당은 1950년에 구왕궁재산처분법, 1954년에 구황실재산법을 만들어
조선왕조 일가족의 재산을 국가에 몰수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영친왕 이은의 귀국을 철저하게 막았다 (영친왕의 부인 마사코 증언)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이방자 여사 30주기와 한일 신시대 | 연합뉴스
조선인들은 처음에 영친왕에 동정적 시선이었는데
자기 아들의 MIT 졸업식에 가야한다고 일본 국적을 얻은 영친왕에 실망

1961년에 권력을 잡은 박정희가
1962년에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 (마사코)와 만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

위의 모든 내용은 한국사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다
좌편향된 사학계를 생각하면 절대 나올 수가 없겠지





참전용사가 근정전의 임금 자리를 보고 '도둑놈들이 앉았던 자리'라고 하니까
고종의 손자라는 사람이
참전용사한테 역사 운운하는 꼬라지